부산교육연구소

[토요에세이] 노만이 만난 사람들 - 이광호이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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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댓글 0건 조회 804회 작성일 15-05-11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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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에세이] 노만이 만난 사람들

 
내가 일하고 있는 부산교육연구소는 부설기관으로 온새미학교란 대안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가르거나 쪼개지 아니한 생긴 그대로의 상태'를 뜻하는 온새미란 말의 의미대로 이 학교는 대안교육을 원하는 일반 아이들, 경증 장애, 다문화 가정, 학교 부적응 아이들이 한데 어우러져 생활하고 있다.
 
대안학교에 온 파키스탄 학생
주위 보살핌으로 학업 계속
야간학급 제자의 뒷바라지도

 
중학교 1학년은 국내 및 일본 여행, 중학교 3학년은 45일간 인도-네팔 여행, 고등학교 2학년은 졸업여행으로 80여 일간 유럽 각 나라를 배낭 여행하면서 길 위의 학교를 표방하고 있다. 아이들은 길 위에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며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교감하면서 세상은 더불어 사는 곳임을 스스로 깨쳐 가고 있다.  

내가 파키스탄에서 온 노만이라는 한 학생과 이 학교에서 만난 것은 4년 전이었다. 부모가 이주노동자로서 아이의 한국 생활 적응을 위해 온새미학교를 선택하였는데, 가정 형편상 부모 모두 파키스탄으로 돌아가게 되면서 아이만 한국에 남게 되어 버린 중학교 3학년 1학기 초였다. 당시에 노만은 부모님이 여권을 가지고 귀국하는 바람에 여권이 없는 상태여서 새 여권 발급을 위해 교장 선생님이 서울 파키스탄 대사관을 방문하여 노만이 학교생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요청하게 되었고 본국의 부모와 연락하여 겨우 새 여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또 하나의 어려움은 비자가 만료되어 더는 한국 체류가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었다. 온새미학교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법무부 장관, 부산출입국관리소 앞으로 간절한 내용의 편지를 보내어 체류요청을 하였고, 부산출입국관리소에서는 노만이 체류할 수 있는지 학교를 방문하여 노만의 숙식과 교사들의 특별한 보살핌을 전제로 3개월마다 체류 연장이 가능하도록 배려해 주었다. 참 고마운 일이었다. 이러한 일련의 일들에 대해 교장 선생님이 연구소 모임에서 이야기하면서 노만의 생활비는 박봉의 교장 선생님이 맡는다고 하셨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문득 떠오른 사람이 당시 대연동에서 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던 모 원장이었다. 그 원장은 내가 교사의 첫걸음을 내딛던 1980년대 초, 금성중학교 야간학급 제자이다. 당시에 야간학급에서 만난 아이들은 생계를 위해 연장 밤일을 해야만 하는 현실이었다. 연장 밤일을 위해 학교를 떠나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는 게 교사로서는 얼마나 힘든 일이었던지….

그 원장도 여러 가지 형편상 두 해 늦게 중학교에 입학하였는데, 학기 초 면담에서 한 이야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집을 떠나 서울의 한 목욕탕에서 일하고 있을 때, 틈틈이 천자문 책을 보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할아버지께서 어떤 형편이든지 학업을 계속하라는 충고를 해 주셨고, 그 길로 부산으로 내려와 입학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어려운 학업 생활을 마치고 한의사로서 병원을 개업할 즈음 그는 앞으로 남을 도우면서 사는 삶을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나는 그에게 노만의 사정을 이야기하면서 도움을 요청하였고, 그는 노만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돕겠다고 약속했다. 벌써 4년 전 일이다.
온새미학교는 지난해에 노만의 아버지를 초청하여 노만의 현재 생활과 장래에 대해 상담을 하였고, 이제 겨울이 오면 노만은 온새미학교와 주변 많은 사람의 따뜻함을 안고 아버지의 나라 파키스탄으로 돌아간다. 나는 지금 5월의 꽃향기처럼 아름다운 노만과 원장의 첫 만남을 주선하고 있다. 이 만남이 노만이 그의 길을 걷는 동안, 그의 발걸음에 힘을 붙이는 아름다운 기억과 꿈을 이루는 미래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광호  
 
㈔부산교육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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