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사교육 잡겠다며 수능 영향력 키우는 교육부의 거짓말 [왜냐면]

장승진 | 좋은교사운동 정책위원

 ‘한비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초나라에서 방패와 창을 파는 상인이 있었는데, 그가 자랑하며 말했다. “내 방패는 견고하여 이것을 뚫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곧이어 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 창은 날카로워 사물 중에 뚫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물었다. “그대의 그 창으로 그대의 방패를 뚫으면 어찌 되는가?” 그 상인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최근 교육부의 사교육비 조사 결과 발표는 고사성어 ‘모순’을 떠올리게 한다. 2023년 초·중·고 학생의 사교육비 지출은 27조1천억원으로 2021년 23조4천억원, 2022년 26조원을 넘어 신기록을 세웠다. 9년 만의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으며 사교육비를 잡겠다고 공언한 교육부로서는 입장이 난처할 수밖에 없다. 왜 이러한 수치가 나타났을까? 정답은 교육부 정책의 모순에 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교육이 극성스런 까닭은 그 효과가 극적이어서다. 수능은 국가 수준 대학입학 시험으로는 선진국에서 유래를 찾기 어려운 오지선다형 문항을 기반으로 하며, 한국 교육을 오래전부터 정해진 답 찾기 훈련에 종속시켜 왔다. 정해진 답 찾기 훈련은 정확히는 교육이라 칭하기도 부끄러운 문제풀이 기술을 연마하는 셈이다. 문제풀이 기술은 사교육이 특화될 수밖에 없는 영역으로, 이런 류의 평가 비중이 높아지거나 영향력이 커질수록 사교육 효과도 극대화된다. 지난해 교육부가 표면적으로 사교육 경감 대책을 내놓았으나, 오히려 암묵적으로는 사교육 증강 정책들을 내놓았다고 평가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2028 대입제도 개편안이 수능의 영향력을 증대시켰기 때문이다. 개편안은 내신을 5등급제로 바꾸면서도 수능만큼은 9등급제를 견고히 했다. 그 결과 대학들은 내신 변별이 어려워진다며 수능 최저 기준을 넓힐 것이고, 이전에 그랬듯 수능의 영향력이 커지면 커질수록 특목고, 자사고, 사교육특구는 유리한 위치에 설 것이다. 이미 눈치 있는 교육 수요자들은 사교육에 대한 정부의 은밀한 메시지를 받아들여 한발 앞서 움직이고 있다.

나아가 교육부는 외고, 국제고,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정책도 발맞춰 일괄 폐지함으로써 메시지를 보다 강력히 부호화했다. 우리 사회에서 희망 고교 유형에 따라 중·고 사교육비 지출이 달라진다는 것은 보편화된 사실이다. 국회 교육위 강득구 의원과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실시한 조사 결과는 일반고 희망 학생 대비 과학고는 5.9배, 영재학교는 3.4배, 외고·국제고는 2.7배, 자사고는 2.1배까지 격차가 나타남을 보여준다. 결국 현 정부가 강조하는 고교 다양화 정책의 이면은 교육의 시장경제화로 계급화·수직화된 고교 서열의 상층에 진입하기 위해 학생·학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우위를 점하기 위한 투자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현 수능 체제와 고교 체제 아래서 그 길은 사교육 투자로 귀결된다.

이처럼 현 정부는 표면적으로는 사교육 경감 대책을, 이면적으로는 사교육 증강 정책을 내놓았다.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는 교육당국도, 사교육 효과를 증강해 둔 교육당국도 결국은 하나이니 어찌 한비자의 ‘모순’을 떠올리지 않을 수 있을까. 다만 둘 사이에는 한 가지 차이가 있다면, 고사에서는 창에 대한 설명이 거짓인지 방패에 대한 설명이 거짓인지 아니면 둘 다 거짓인지 결과를 확인할 길이 없지만, 현 교육부의 사교육비 조사 결과 발표는 무엇이 거짓인지 확인을 가능케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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