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교육 카르텔만 막는다고 수능 공정성 확보되나

정부가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시행 계획을 발표하며 출제진과 사교육 업체 간 카르텔을 근절하는 방안을 28일 내놨다. 사교육과의 연관 고리를 차단해 수능 출제의 공정성을 높인다는 취지다. 하지만 사교육에서 흘러나온 판박이 문항을 틀어막는 것만으로 공정성이 확보될 것이란 인식은 매우 안이하다. 기존 상대평가 수능이 계속 유지되는 한 사교육 영향력은 결코 줄어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앞으로 문항 오류에 대한 이의신청 심사 기준에 사교육 연관성을 추가하고, 사교육 업체가 만든 문제지와 수능 문항의 유사성을 철저히 검증하기로 했다. 앞서 감사원은 2023학년도 수능 영어 지문 일부가 이전에 출제된 사교육 강사의 모의고사 지문과 같은 것으로 드러났다며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특히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이를 제대로 걸러내지 못했을 뿐 아니라, 다수의 이의신청에도 해당 안건을 심사하지 않아 허점을 드러냈다. 이에 아직 시중에 공개되지 않은 사교육 업체의 발간 예정 문제까지 샅샅이 살펴보겠다는 것이다.

평가원의 신뢰도가 크게 무너진 상황에서, 사교육 업체와 수능 출제진 간 유착을 끊어내겠다는 것은 당연한 조처다. 다만 수능 출제 문항과 사교육의 연관성을 밝혀내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문항의 지문을 완전히 똑같이 출제하지 않는 한 유사성을 어디까지 인정할 것이냐를 두고 논란이 꼬리를 물고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정부는 출제진 선정 시 공정성을 강화하고 인력풀 관리에도 힘쓰겠다고 했지만, 이미 허점을 드러낸 평가원이 사교육 카르텔을 제대로 차단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무엇보다 사교육 의존도를 낮출 수 있는 근본 처방 없이는 땜질식 처방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초중고 사교육비 총액(27조1천억원)은 학령인구 감소에도 불구하고 다시 역대 최대치를 갈아치웠다. 소득 구간에 따른 사교육비 격차도 전년보다 더 벌어졌다. 상대평가를 근간으로 하는 수능은 사교육에서 문제풀이를 많이 할수록 유리하다. 이런 구조에서 사교육 업체를 거친 판박이 지문만 틀어막는다고 공정성이 확보됐다고 할 수 있나. 정부는 고교학점제 도입 이후에도 상대평가 수능을 유지하기로 했고 일반고 전환 예정이었던 자사고·특목고도 존치하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사교육 경감 대책으로 카르텔 근절만 외칠 것이 아니라 사교육을 유발하는 교육 정책의 기조를 돌아봐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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