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설까 두렵다”…봄은 왔지만 봄소풍 안 간다는 교사들

초등학교 체험학습 장소로 인기가 높은 경기도의 한 업체는 올해 ‘봄 소풍 대목’을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예약이 예년보다 30~40%가량 줄었기 때문이다. 치즈 만들기와 염소 밥 주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 업체 사장은 “지난해 ‘노란 버스’ 논란과 서이초 사건이 있으면서 학교 60곳이 예약을 줄취소 했는데, 올해도 계속 조심스러운 분위기”라고 말했다. 실제 서울의 한 초등학교는 5월에 체험학습을 오겠다고 예약했다가 ‘안전상의 이유’로 10월로 연기했다.

봄은 왔지만 봄 소풍 안 간다는 교사들봄 소풍 시즌이 찾아왔지만, 학교 현장은 아직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으나 봄 같지 않다)’이다. 교사들이 “안전사고 책임과 학부모 민원을 떠안으면서 현장 체험학습(소풍)을 가야 하느냐”며 봄철 체험학습을 ‘보이콧’하면서 소풍을 가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학교가 많기 때문이다.

서울 A초등학교는 안전사고 우려가 큰 저학년 교사들이 체험학습에 반대하면서, 고학년만 가는 방식을 택했다. 이 학교 교사는 “보이콧한 학년에선 학생 수요조사조차 시작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기 김포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도 체험학습을 두고 교사와 교장이 갈등을 겪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이 학교 교사는 “4개 학년 교사가 현장학습을 반대하는데도 교장이 모든 학년이 현장학습을 가야 한다고 지시했다”며 “현장학습을 강행하지 말라는 공문을 발송해달라고 경기초등교사협회 측에 요청했다”고 말했다.

사고 나면 교사 책임…“학교 밖 무섭다”

지난해 12월 한 초등학교 통학 차량에 학생들이 오르고 있다. 연합뉴스교사들이 체험학습을 꺼리는 이유는 안전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떠안을 수 있다는 걱정 때문이다. 지난해 7월 교육부가 일선 학교에 “체험학습에 일반 전세 버스가 아닌 어린이 통학 버스를 이용해야 한다”는 공문을 보내며 시작된 이른바 ‘노란 버스’ 사태 당시 각 학교는 체험학습을 잇달아 취소했다. 이후 어린이 체험학습에 전세 버스를 이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의 도로교통법 개정안이 국회서 통과했지만, 이동 수단 외 문제는 교사 책임일 수 있다는 인식이 여전하다.

경기 시흥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교문 밖을 나가면 통제가 더 힘들기 때문에 교사들이 현장 체험학습을 주저하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도 “지난해 수학여행으로 간 제주 호텔에서 한 학생이 3층 베란다 난간을 넘어 옆 방으로 가려고 했다. 이렇게 예측 불가능한 일도 무조건 교사가 책임지는 구조”라고 토로했다.

“아이 방 혼자 쓰게 해달라” 막무가내 민원도

16일 강원 춘천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제자를 잃은 인솔 교사 무죄 판결 탄원 기자회견’. 연합뉴스실제 체험학습에 관한 안전 관리 문제로 법정에 가는 사례도 적지 않다. 2022년 11월 강원 속초에서 현장체험학습을 하던 초등학생이 버스에 치여 숨지자, 검찰은 인솔 교사 2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기소했다. 첫 재판은 오는 19일 열린다. 교원단체는 무죄를 촉구하는 성명을 내고, 전국 교사들은 ‘릴레이 탄원’ 운동을 벌였다. 신경호 강원특별자치도 교육감도 인솔 교사들을 선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법원에 냈다.

교사들은 체험학습을 준비할 때부터 “과중한 업무와 민원에 시달린다”고 입을 모은다. 강원의 한 고등학교 교사는 “아이가 혼자 방을 쓰게 해달라거나 별도의 숙소를 잡아달라는 등 막무가내 민원을 넣는 학부모가 있다”고 했다.

교육부 “소송 지원 등 선생님 보호하겠다”1년에 한 번뿐인 봄 소풍이고 교육적인 취지도 있기 때문에 만반의 준비를 해 체험학습을 가겠다는 학교도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안전에 관한 학교의 문의 전화가 많다. 지난해 급격하게 감소했던 체험학습이 대부분 회복하는 단계”라고 말했다. 교육부도 “교원배상책임보험과 소송 전후 지원 등을 확대해 선생님을 보호하겠다”고 했다.

서지원·최민지 기자 seo.jiwo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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